우리는 이제 인공지능과 대화하고, 인공지능이 쓴 글을 읽으며, 때로는 그것이 인간보다 더 나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과연 인공지능은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예측’하고 있을 뿐일까요?
기호학은 오랫동안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언어와 상징을 통해 구성되는지를 설명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생성형 AI, GPT와 같은 모델이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히 ‘기호의 조합’인지, 아니면 그 안에 어떤 수준의 ‘의미 해석’이 존재하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인공지능이 기호를 어떻게 ‘처리’하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의 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모방’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의미 없는 구조를 의미처럼 보이게 만드는 AI의 작동 방식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다시 도달하게 됩니다.

1. 우리는 AI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GPT가 글을 잘 썼다", "AI가 생각한 것 같다"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 속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과연 인공지능이 어떤 의미에서 '이해'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기호를 통해 사고합니다. 언어는 단지 전달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프레임입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언어를 처리한다는 것은, 인간처럼 '기호를 해석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단지 텍스트를 예측하는 통계 모델에 불과할까요?
2. 기호학에서 말하는 '의미'란 무엇인가?
기호학은 의미란 기호(signifier)와 기의(signified)의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즉, '나무'라는 단어는 현실의 나무를 직접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나무에 대한 관념'을 가리킵니다. 의미란 단지 단어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맥락, 말하는 사람의 의도, 듣는 사람의 해석 등 수많은 요소가 얽힌 관계적 구조 속에서 형성됩니다. 따라서 기호학의 관점에서 '이해'란 기호의 외형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맺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연결망을 해석하는 과정입니다.
3. AI 언어 모델은 기호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GPT와 같은 AI 언어 모델은 기존의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계적 확률에 따라 단어와 문장을 생성합니다. 이 과정은 인간처럼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문맥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예측이 의도나 맥락을 이해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 속 패턴에 기반한 결과라는 점입니다. AI는 단어를 연결하되, 그 안의 의도, 감정, 맥락의 총합을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즉, '기호를 나열하는 능력'은 갖췄지만, '기호를 해석해 맥락적 의미를 생성하는 능력'은 아직 인간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예측과 이해는 다르다: 의미 생성의 문제
기호학에서 '이해'란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고려해 그 의미를 '생성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반면 AI는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적절한 응답을 '예측'합니다. 예측은 기술적으로 정교해질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의미를 이해했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종종 AI의 문장이 논리적이지만 비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의미는 단지 단어 사이의 확률적 조합이 아니라, 그것이 발생하는 맥락과 의도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5. 인공지능의 기호학적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인공지능은 매우 빠르게 언어를 흉내 내는 기술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중요한 부분이 비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주체적 감각입니다. 인간은 기호를 해석할 때, 그것이 담긴 역사, 문화, 감정, 관계를 함께 불러냅니다. 반면 AI는 이 기호들을 데이터로만 처리합니다. 메타포, 아이러니, 유머, 함축, 맥락 전환 같은 고차원적 의미 생성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해석 능력에 의존합니다. AI가 기호를 분석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 감정을 담고, 의미를 느끼는 존재는 아닙니다.
6. 인간과 AI는 함께 해석할 수 있는가?
우리는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질문하고, AI가 응답하며, 그 안에서 전혀 새로운 연결이 형성됩니다. 이 과정은 일방적이기보다, 기호를 매개로 한 공동 해석에 가깝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가 완전한 해석자가 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기계의 예측 능력과 인간의 해석 능력이 어떻게 상호 보완되는가입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는 하이브리드 기호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해 보면
인공지능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언어는 무엇인가?", "이해란 어떤 상태인가?", "기호는 언제 살아있는가?" AI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자연스럽고, 때로는 깊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삶의 무게나 체험의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공허함 속에서 오히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해석이 무엇인지 더 분명히 느끼게 됩니다. 기호는 단지 단어의 집합이 아니라, 시간, 기억, 문화, 정서가 뒤섞인 복합물입니다. AI가 그 기호를 다룰 수는 있어도, 그 안에 깃든 삶을 산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질문을 더 확장해 보려 합니다. AI와 인간이 공유하는 언어의 경계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기계와 인간이 공감하는 언어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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