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AI의 은유 해석 능력과 기호학적 한계
본문 바로가기
문화와 상징

생성형 AI의 은유 해석 능력과 기호학적 한계

by 블로거 김 2025. 8. 1.

우리는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은유를 사용합니다. "시간이 흐른다", "마음이 무겁다"처럼 구체적이지 않은 개념조차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며 사고합니다. 이러한 은유는 단순한 언어적 장치가 아닌, 인간 사고의 기본 구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런 은유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텍스트를 학습한 AI는 의미를 파악하고, 메타포를 감지하며, 맥락에 따라 비유적으로 응답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기호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이해'는 과연 어떤 수준일까요? 이 글에서는 은유의 기호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생성형 AI의 은유 해석 능력의 실체와 한계에 대해 탐구해 보려 합니다.

AI의 은유 해석 능력과 기호학적 한계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런 은유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1. 은유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사고의 틀로서의 은유

은유는 단지 문학적 수사나 꾸밈 표현이 아닙니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와 마크 존슨(Mark Johnson)은 저서 『우리의 마음은 은유로 가득하다』에서 은유를 '인간 사고의 기본 구조'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인간은 감정, 시간, 관계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이미지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표현합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는 지금 얼어붙었어", "오늘 하루가 참 무겁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고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은유는 문화, 언어, 맥락에 따라 달라지며, 고정된 정답이 없습니다. 그것은 경험의 총체이자, 기호의 진화 그 자체입니다.

2. 생성형 AI는 은유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GPT를 포함한 생성형 AI는 방대한 양의 문장을 학습하고, 그 패턴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가장 적절한 단어를 생성합니다. 예를 들어, "삶은 마라톤이다"라는 문장이 자주 등장했다면, AI는 그것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언어 패턴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인간은 이 문장을 들으며 삶의 긴 여정, 지치고도 견뎌야 하는 감정, 목적지 없는 달리기를 떠올립니다. 반면 AI는 이런 함축적 감정이나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다음에 올 문장을 확률적으로 예측할 뿐입니다.
결국 AI가 은유를 '사용'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3. 통계적 예측과 상징적 해석 사이의 간극

생성형 AI는 수많은 언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텍스트를 생성합니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통계적 예측입니다. 언뜻 보기엔 AI가 시적이고 은유적인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결과는 과거 데이터의 반복적인 패턴과 확률적 조합의 산물입니다.
인간이 은유를 사용할 때는 그 뒤에 복합적인 경험, 감정, 문화가 존재합니다. 반면 AI가 생성하는 은유는 그 기표(표현)는 닮아 있으되, 기의(의미)는 텅 비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호학적으로 볼 때 ‘의미의 불균형’이며, AI가 가진 한계의 실체입니다.

4. 기호학으로 본 AI의 해석 능력 한계

기호학은 기호와 의미 사이의 관계, 맥락 속의 해석을 중시합니다. 특히 바르트는 은유를 통해 기호가 이차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은유를 통해 새로운 기호 체계를 생성하고, 그 기호를 통해 정체성을 구성합니다.
하지만 AI는 의미를 생성하지 못합니다. 단지 반복된 패턴의 기호들을 조합할 뿐이며, 그것이 만들어내는 감정적・철학적 의미는 인간 해석자의 몫입니다. AI는 기호를 나열할 수는 있지만, 그 기호가 담고 있는 사회적・문화적 함축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은 부재합니다.

5. 인간과 AI, 은유의 공동 해석 가능성

AI가 은유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AI가 생성한 불완전한 은유는 인간 해석자의 개입을 유도합니다. 이때 우리는 AI가 제공한 언어적 틀 안에서 새로운 연결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며, 공동 창작의 가능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호학적 관점에서 이는 ‘공동 의미 생성(co-construction of meaning)’의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AI가 던진 문장에 인간이 감정을 부여하고, AI는 다시 그 흐름을 학습하며 점점 더 정교한 언어를 만들어 갑니다. 기계와 인간의 의미 협업은 은유 해석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열쇠입니다.

생각을 정리해보면

AI가 만들어낸 은유는 때로 놀랍도록 자연스럽고, 어쩌면 인간보다 더 유창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기억도, 체험도, 맥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은유는 상처에서 나오고, 관계에서 빚어지며, 시간 속에서 발효됩니다. 그런 점에서 기호학이 강조하는 '은유의 사회적 맥락'은 여전히 인간만이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지점이라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AI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계가 제공하는 패턴과 틀을 새로운 사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인간 vs. AI의 대립이 아니라, 기호 해석의 새로운 협업 양식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연장선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AI는 ‘감정’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감정은 기호를 통해 표현될 수 있는가? AI가 감정을 해석하는 방식은 기호학적으로 어떤 한계를 가질까요? 인간적인 감정과 기계적인 정서 표현 사이의 차이를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